충남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012년 3월 22일 개봉한 이용주 감독의 로맨스 영화로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가 출연한 건축학개론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문구로 유명한 영화예요. 개봉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영화인데도 다시 보니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아팠습니다. 그때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로 봤는데 이번에는 놓쳐버린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보였거든요.

1. 건축학개론, 어떤 영화
생기 넘치지만 숫기 없던 스무 살 건축학과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합니다. 같은 동네에 살던 두 사람은 함께 숙제를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져요. 그런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승민은 작은 오해로 서연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15년 후. 건축가가 된 승민 앞에 서연이 불쑥 찾아옵니다. 제주도에 있는 낡은 집을 새로 고쳐 짓고 싶다며 첫사랑이던 승민에게 설계를 부탁하는 거예요. 승민은 망설이지만 결국 이 일을 맡게 되고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납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2. 두 명의 승민, 두 명의 서연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같은 인물을 두 배우가 나눠서 연기한다는 거예요. 과거의 승민은 이제훈이, 현재의 승민은 엄태웅이 맡았습니다. 과거의 서연은 수지가, 현재의 서연은 한가인이 연기했어요. 이제훈은 이 영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판타지아상을 받았고 수지는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이제훈의 승민은 말 한마디 못 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웠어요. 수지의 서연은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걸어 나온 것 같은 존재감이었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납뜩이에요. 조정석이 연기한 승민의 친구인데 영화의 무거운 감정선 사이에서 웃음을 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유연석이 연기한 선배 재욱도 짧지만 인상 깊었어요.
3. 집을 짓는다는 것의 의미
제목이 건축학개론인 이유가 영화를 보면 보입니다. 승민이 서연의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두 사람이 15년 동안 마음속에 짓지 못한 집을 이제야 짓는 과정입니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완성되는 건데 두 사람의 사랑은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채 끝났으니까요. 서연의 낡은 집을 허물지 않고 고쳐 짓는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합니다. 과거를 지우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보시면 기억과 사랑을 대하는 두 영화의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4. 결말 이야기
과거로 돌아가 보면 승민은 서연에게 첫눈 오는 날 폐가에서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완벽한 타이밍에 고백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전날 밤 선배 재욱과 함께 있는 서연의 모습을 보고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서연은 혼자 폐가에서 승민을 기다리다 실망한 채 자신이 좋아하던 가수의 CD와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남기고 떠납니다. 현재로 돌아와서 승민은 그 CD 플레이어와 CD를 서연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사실 자기도 그날 약속을 기억하고 폐가에 갔었다는 사실을 전해요. 15년이 걸려서야 꺼낸 말입니다. 그런데도 승민은 결국 약혼녀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기로 합니다. 이 결말이 많은 분들에게 답답함을 남기는 것 같아요. 15년 만에 진심을 말하고도 결국 돌아서는 승민이요. 그런데 저는 이게 이 영화가 첫사랑을 다루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름답고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래 남는 거니까요.
5. 영화 감상평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는 연애 영화를 보면서도 아이들의 입장이 먼저 떠오릅니다. 지금은 사춘기라 투덜거리는 아이들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고 서툴러서 놓치는 경험을 하겠지요. 그때 곁에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승민처럼 한 발 늦게 용기를 내는 사람도 있고 서연처럼 먼저 마음을 내밀고 상처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시절의 서툰 마음은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는다는 걸 이 영화가 알려줍니다. 첫사랑이 떠오르는 분, 오래된 음악이 그리운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