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파반느 보고 나서 이번엔 오래된 명작을 꺼냈습니다. 1995년 개봉한 일본 로맨스 영화인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러브레터입니다. 한국에는 1999년에 개봉해서 오겡키데스까라는 대사가 유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30년이 넘은 영화인데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봐야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눈 덮인 오타루의 풍경과 잔잔한 음악이 보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줬어요.

1. 러브레터, 어떤 영화
산악 등반 사고로 죽은 연인 이츠키를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는 히로코. 2년이 지나도 이츠키를 잊지 못한 히로코는 충동적으로 이츠키의 중학교 시절 주소로 편지를 씁니다. 죽은 사람에게 쓴 편지였으니 당연히 답장이 올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답장이 왔습니다. 편지를 받은 건 죽은 이츠키가 아니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동창생 이츠키였습니다. 남자 이츠키와 여자 이츠키가 동명이인이었던 거예요.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여자 이츠키의 편지를 통해 히로코는 죽은 연인이 중학교 시절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가게 됩니다. 엉뚱하게 배달된 편지 한 통에서 시작해서, 눈 덮인 오타루와 고베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겉으로는 잔잔한 러브스토리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함께 담겨 있어요. 1999년에 한국과 대만 등에서도 개봉했는데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오겡키데스까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2. 나카야마 미호의 1인 2역이 이 영화의 핵심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설정이 바로 1인 2 역입니다. 나카야마 미호가 히로코와 여자 이츠키를 모두 연기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얼굴이 똑같다는 설정이에요. 죽은 남자 이츠키가 왜 히로코를 좋아하게 됐는지가 이 설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한 배우가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를 소화하는 게 쉽지 않은데 나카야마 미호는 히로코의 슬픔과 여자 이츠키의 발랄함을 모두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두 사람이 화면에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같은 배우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3. 이 영화가 30년이 지나도 명작인 이유
러브레터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찾아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영화입니다. 눈 덮인 오타루의 풍경이 이 영화를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흰 눈이 가득한 거리, 조용한 도서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들이 마치 한 편의 시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이별의 슬픔 첫사랑의 아련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잔잔하게 담겨있습니다. 거창하게 떠들지 않고 조용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이와이 슌지 감독의 특기입니다. 이후에 나온 이와이 슌지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유독 이 영화만큼은 늘 기준점처럼 언급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가 감독의 커리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는 뜻이겠죠. 히로코가 눈 덮인 산을 향해 소리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오겡키데스까. 잘 지내고 있나요? 죽은 연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그동안 잊지 못하고 붙잡고 있었던 연인에게 이제는 잘 가라고 보내주는 장면이에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되는지는 직접 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면 아무것도 전달이 안 됩니다. 그냥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4. 결말 이야기
여자 이츠키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중학교 시절 남자 이츠키를 조금씩 떠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도서관 대출 카드 뒷면에 그림이 있었습니다. 남자 이츠키가 몰래 그려두었던 여자 이츠키의 초상화였어요. 남자 이츠키가 중학교 때 여자 이츠키를 좋아했다는 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히로코가 남자 이츠키를 좋아했던 건 여자 이츠키를 닮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남자 이츠키가 첫사랑인 여자 이츠키를 닮은 히로코에게 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고요. 이 사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이츠키는 웃으면서 울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그 감정이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됐습니다. 그리고 히로코는 산 앞에서 오겡키데스까를 외치며 드디어 떠나보냅니다. 슬프지만 따뜻한 결말입니다.
5. 느낀 점
남편이랑 같이 봤습니다. 남편이 보다가 조용해지더니 끝나고 나서 첫사랑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제가 뭐라고 했냐고요? 그래서 나랑 결혼한 거잖아요라고 했더니 남편이 웃었습니다. 이 영화는 첫사랑의 아련함과 이별의 슬픔을 이렇게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젊은 시절에 봤던 분들은 그 시절이 떠오르고 처음 보시는 분들은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영화예요. 겨울에 보시면 더 좋습니다. 눈 내리는 날 따뜻한 차 한 잔 들고 보시면 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