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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세상을 구하려다 세상을 파괴한 남자의 이야기

by 와이지엠 202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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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023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기 드라마 영화로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 오펜하이머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예요. 18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부담됐지만 물리학 이야기가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보기 시작하고 나서 18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습니다. 이건 물리학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였거든요. 인셉션, 오디세이, 그을린 사랑에 이어 이번이 놀란 감독의 영화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됐습니다.

1. 오펜하이머, 어떤 영화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해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입니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에요. 1942년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은 나치보다 먼저 원자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오펜하이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영입합니다. 뉴멕시코 사막 로스앨러모스에 비밀 연구소가 세워지고 미국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새벽 세계 최초의 핵폭탄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합니다. 인류 역사가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삶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원자폭탄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투하 이후의 죄책감, 그리고 공산주의 연루 의혹으로 청문회에 서게 되는 과정까지요.

2. 킬리언 머피가 이 영화의 전부

킬리언 머피의 오펜하이머는 영화 역사에 남을 연기입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 당연했어요. 오펜하이머는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천재 과학자이면서 공산주의에 경도된 좌익 과학자이고 원자폭탄을 만들었으면서 그 결과를 두려워한 사람이에요. 이 세 가지 면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걸 킬리언 머피가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킬리언 머피의 눈빛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부분이에요. 트리니티 실험 성공 후 그 버섯구름을 바라보는 오펜하이머의 눈빛. 거기에 담긴 감정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기쁨인지 공포인지 후회인지. 아마 그 모든 감정이 동시에 있었을 거예요.

3. 이 영화의 구조가 독창적

놀란 감독은 이 영화를 컬러와 흑백으로 구분해서 보여줍니다. 오펜하이머의 시점은 컬러로,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시점은 흑백으로 교차 편집됩니다. 처음엔 이 구조가 낯설지만 보다 보면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오펜하이머의 주관적 경험과 청문회라는 객관적 사실이 교차하면서 영화 전체의 의미가 완성되거든요. 원자폭탄 폭발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부분입니다. 소리 없이 빛만 터지는 그 순간. 놀란 감독은 그 굉음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길게 보여줍니다. 빛이 번지고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그리고 한참 뒤에야 소리가 들려오는 그 연출이 너무나 강렬했어요.

4. 원폭 투하 이후 오펜하이머의 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묵직한 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의 오펜하이머입니다. 원자폭탄을 만들 때 오펜하이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치가 먼저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폭탄이 사용되고 나서 오펜하이머의 내면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실험 성공 후 떠올린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이에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멈추게 할 수단이라고 믿었던 발명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왔을 때, 그걸 만든 사람은 평생 그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그 질문만 관객에게 남깁니다.

5. 결말 이야기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 연루 의혹으로 청문회에 서게 됩니다. 그 청문회가 사실은 루이스 스트로스의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게 흑백 시퀀스에서 드러납니다. 오펜하이머는 청문회에서 보안 허가를 박탈당합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이 정작 전후에는 나라에서 버림받는 아이러니한 결말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부분입니다.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장면인데 오펜하이머가 핵폭탄의 연쇄반응이 대기권 전체에 번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실험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암시됩니다. 세상이 끝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 트리니티를 터뜨렸던 오펜하이머. 그 무게가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합니다.

6. 리뷰

남편이랑 같이 봤습니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어요. 이렇게 무거운 영화가 오랜만이었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오펜하이머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알게 된 후 대통령 앞에서 두 손에 피가 묻어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떤 역사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인셉션과 오디세이를 좋아하셨다면 오펜하이머도 반드시 보세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중 가장 인간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리학을 몰라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이건 과학 영화가 아니라 인간 영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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