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독립영화 우리들을 선택해서 보았습니다. 2016년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인데, 아이유가 인생 영화로 꼽고 봉준호 감독이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로 꼽은 작품이라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아이들 영화인데 어른인 제가 더 많이 울컥했습니다.

1. 우리들, 영화소개
반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운 소녀 선이 여름방학 때 전학생 지아를 만나 친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2016년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6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전체 관람가 영화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선이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겉돌고 집 안에서는 병든 부모님과 말썽꾸러기 동생 윤이를 돌보느라 바쁩니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인기 많은 보라는 선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따돌립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됐을 때 전학생 지아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화려한 볼거리도 없습니다. 그냥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여름방학과 개학 이야기입니다. 선과 지아가 처음엔 서로를 의지하며 우정을 쌓아가지만 개학 후 지아가 반에서 인기 있는 보라 무리에 끼기 위해 선이를 모른 척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 아팠습니다. 선이는 지아가 자신을 외면하는 것에 상처받다가 결국 지아의 비밀을 반 아이들에게 폭로하고 맙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과정을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보여줍니다. 영화는 극적인 화해나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냥 조금 씁쓸하게, 조금 아프게 끝납니다. 그 여운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남았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이 영화 속 아이들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리 애들도 저런 감정을 겪고 있을 텐데,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대본이 없이 촬영
영화를 보면서 계속 신기했습니다. 아역 배우들인데 왜 이렇게 연기가 자연스럽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비밀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아역 배우들은 연기 경력이 한 번도 없는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윤가은 감독은 이 아이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고 3개월간 오디션을 진행한 뒤 다시 3개월간 리허설을 했습니다. 리허설에서는 게임도 하고 즉흥극 놀이도 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익히도록 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도 대본이 없었습니다. 장면의 상황만 설명해 주고 배우들이 느낀 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즉흥적인 연기를 한 번에 담기 위해 항상 두 대의 카메라가 배우들을 포착했습니다. 이 방법이 얼마나 통했냐면, 다른 감독들이 아역 배우 연기 연출을 부탁하는 러브콜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정지우 감독은 "아이들의 연기에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라고 극찬했습니다.
3. 감독의 자전적 경험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이야기인데, 윤가은 감독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짝 친구와 이유도 모르게 멀어진 경험에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들 속 인물이 다 나다"라고 말한 감독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 섭섭함이 수십 년이 지나 영화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습니다. 제작비가 1억 5,000만 원이었습니다. 정말 저예산 독립영화인데, 아이유와 봉준호 감독이 인생 영화로 꼽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영화입니다. 돈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영화가 증명했습니다.
4. 영화의 기록들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에 이어 뉴욕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도 상영됐습니다.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외 30개 이상의 영화상을 휩쓸었습니다. 이 영화는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영화 감상 방법과 인물의 언동을 해석하는 수업 내용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교과서에 실린 영화를 보게 될 줄 몰랐는데, 알고 나서 보니 더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어린이 영화가 아닙니다. 어른을 위한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겪었을 소외감, 외로움, 배신감,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 입혔던 기억을 꺼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어른이 보면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아이가 보면 지금 자신의 이야기가 보입니다.
5. 영화 후기
세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에서 친구 문제로 속상해하는 아이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괜찮아, 그냥 넘겨"라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반성했습니다. 아이들한테 친구 문제는 어른한테 직장 문제만큼 크고 아픈 일이라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 보고 나서 고2 딸한테 "요즘 학교에서 어때?"라고 먼저 물어봤습니다. 오랜만에 둘이 꽤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이 남는 영화입니다. 아이 키우시는 부모님들께, 어린 시절 외로웠던 기억이 있으신 분들께 강력 추천드립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