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004년 제작되어 한국에서는 2005년 11월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로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가 출연한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케이트 윈슬렛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어요. 이 영화는 한 번 봐서는 다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첫 장면부터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여요.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1. 이터널 선샤인, 어떤 영화
조엘은 소심하고 조용한 남자입니다. 어느 발렌타인데이에 우울한 기분으로 직장 대신 몬탁 해변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곳에서 파란 머리의 활달한 여자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져요. 그런데 사실 이 설레는 만남은 처음이 아니라 다시 시작된 인연입니다. 두 사람은 이미 한 번 연인이었고 아픈 이별을 겪었어요. 헤어진 뒤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라쿠나라는 회사에서 둘의 연애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절박해진 조엘도 하워드 미어즈윅 박사를 찾아가 같은 시술을 받기로 해요. 그런데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자 조엘은 깨닫습니다. 나는 아직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요.
2. 짐 캐리의 진지한 연기가 인상적
짐 캐리 하면 코미디 배우가 먼저 떠오르시죠. 그런데 이 영화의 조엘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입니다. 짐 캐리의 진지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어요. 케이트 윈슬렛의 클레멘타인은 정반대입니다. 충동적이고 솔직하고 머리 색깔도 계속 바뀌는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정반대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고 또 서로를 지치게 하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누군가의 연애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3. 기억 속을 달리는 연출이 압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습니다. 조엘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도망 다닙니다. 지우지 말아 달라고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는데 기억은 점점 무너져요. 집이 무너지고 책의 글자가 사라지고 사람의 얼굴이 흐려지는 장면들이 놀랍도록 아름답고 슬픕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디지털 특수효과보다 아날로그 방식과 창의적인 카메라 기법으로 이 장면들을 만들어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화면에서 사람 손으로 만든 따뜻한 질감이 느껴집니다.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풀어낸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4. 제목의 뜻,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원제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알렉산더 포프의 시에서 따온 구절입니다. 흠 없는 마음,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이라는 뜻이에요. 잊는다는 것은 행복일까요. 아픈 기억이 없으면 마음이 깨끗해질까요. 이 영화는 그 질문에 아니라고 답합니다. 아픈 기억을 지우면 그 사람과 함께 웃었던 순간들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조엘이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에서 몸으로 깨닫거든요.
5. 결말 이야기
기억이 거의 다 지워져 가는 순간 조엘은 마지막으로 클레멘타인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몬탁에서 만나자. 그리고 모든 기억이 사라진 조엘은 발렌타인데이 아침에 눈을 뜹니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한편 라쿠나의 직원 메리의 이야기도 충격적입니다. 메리는 자신이 하워드 박사를 사랑했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랑했던 기억은 지울 수 있어도 그를 향한 감정까지 지울 수는 없었던 거예요. 분노한 메리는 환자들이 남긴 녹음테이프를 모두 본인들에게 발송해 버립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각자 그 테이프를 받아 듣게 됩니다. 서로가 상대를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어떤 단점들이 있었는지를 다 듣고도 두 사람은 말합니다. 그래도 괜찮다고요. 조엘이 Okay라고 하자 클레멘타인도 Okay라고 답하고 울 듯 말 듯 어색하게 마주 보고 웃으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갈려요. 또 만나도 똑같이 상처받고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겠다는 두 사람의 선택이 이 영화가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6. 영화평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연애 영화를 보는 눈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예전에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이 가장 아팠는데 이번엔 서로의 단점을 다 알고도 다시 시작하는 장면이 더 오래 남았어요.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설렘뿐 아니라 서로의 못난 모습까지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이 영화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오래 함께한 부부나 연인이라면 더 와닿을 영화예요. 다만 시간 순서가 뒤섞여 나오는 구성이라 처음엔 헷갈릴 수 있습니다. 첫 장면이 처음 만남이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시고 보시면 훨씬 수월합니다.